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4-02 13:34 조회수 : 72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숲속의 동물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기 시작했다. 이를 본 돼지도 노루도 뛰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서 곰과 호랑이도 뛰기 시작해서 온 숲속이 난리였다. 한참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마침내 숲속이 조용해지면서 모든 동물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호랑이가 곰에게 물어보았다. 왜 뛰었냐고? 그러자 곰이 대답했다. 노루가 뛰기 시작해서 자신도 무조건 뛰었다고... 그래서 노루가 돼지에게 물어보았는데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서 처음 뛰었던 토끼에게 모두 시선이 모아졌다. 토끼가 말하기를 자신이 자고 있는데 자신의 이마에 무엇인가가 떨어져서 자신은 놀랬고 그래서 달아났다고 말했다. 동물들은 토끼가 누워서 자고 있던 곳을 가보았더니 도토리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숲속을 소란스럽게 만든 원인은 다름 아닌 도토리 한 알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토리 하나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부하뇌동으로 난리가 난 것이다. 차분하게 알아보지 않고 옆에서 뛰니까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채로 뛴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군중 특유의 행동 방식 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이런 혼란은 인간의 삶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만약 인간이 그 혼란 속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기라도 했다고 생각해 보자. 좁은 길목이나 계단 같은 곳에서라면, 뒤따르던 사람은 또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 밀려서라도 그를 밟고 지나가든지 쓰러져 있는 사람에 넘어짐으로써 자신도 같이 밟혀 죽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람이 죽었다는 가장 큰 비극을 앞에 두고도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군중이라는 것이, 자유와 책임으로 특징지어지는 인간성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성주간의 전례를 통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유와 책임 부담 능력을 상실한 군중으로 변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전례에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는 유다인 군중이 소개되고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루카 19,38) 하고 환호하면서 그분이 타신 나귀마저 흙을 밟을세라 자기네 겉옷을 벗어 길에 깔 정도로 그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 금요일의 수난 복음’에서는 자신들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 없다고 외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분을 미칠 듯이 환영한 것도, 그분을 죽여 없애야한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도 같은 군중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 자주 있는 현상이지만, 이 진리와 정의의 소리들이 군중들에 의해 가차없이 짓밟혀지고, 그러면서도 누구하나 그 과정에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냥 씁씁한 것은 나 혼자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