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안에 잡풀뽑기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성당 한구석에 심어놓은 방울 토마토를 볼 때 마다 연천에서 근무를 할 때가 생각난다. 학교 한 구석에는 상추, 파, 고추, 토마토, 오이, 고구마를 심어 놓은 텃밭이 있었는데 자주 풀을 뽑아 주고 물을 주었다. 비닐을 깔지 않고 농약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여러 가지 벌레들도 많았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내가 기르고자 하는 푸성귀보다는 잡풀들이 억세게 더 잘 자란다. 뽑아도 새로 돋아나고 줄기를 자르면 곧 옆가지를 치고, 밭이나 길바닥에 납작 깔릴 정도로 밟혀도 끈질기게 살아난다.
사람들 가운데 억세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잡초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잡풀은 재배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키우고자하는 작물에 해를 끼치기 식물이라는 뜻이 포함되고 있다. 잡풀을 뽑지 않으면 농작물의 수확량은 눈에 띨 정도로 줄어든다. 그렇기에 농사란 잡풀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농부에게는 고단한 일이다. 그래서 수고로움을 덜기위해서 잡풀을 손쉽게 죽이는 제초제도 있지만 그것은 풀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땅과 벌레, 심지어는 물도 죽인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풀을 뽑곤했다.
성경말씀 중에도 가라지의 비유가 있다. 가라지의 비유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현실에 매우 잘 어울리는 비유이다. 사람들은 나쁜 죄인들을 사회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람과 죄인을 가리는 일은 하느님께서 종말 심판 때에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죄인을 가려내어 없앤다고 하다가 오히려 멀쩡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준이 애매할 뿐 아니라 어쩌먼 우리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고 계시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착한 사람과 죄인에 대한 판단과 상벌은 하느님의 종말 심판을 하시는게 마땅한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만약 나의 삶이 잡풀 같다면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푸성귀로 변화시키는 현명함이 필요한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들을 미움으로 보복하는 것은 하느님과 자신의 삶의 관계를 망가트린다. 미움과 증오는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인격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움을 없애는 방법은 사랑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랑만이 원수를 벗으로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서 존경받고 있는 대통령 중에 대표적인 링컨은 자신을 가장 비난한 반대파의 수장 스캔톤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을 인정해서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후에 링컨이 암살을 당한 후에 장례를 치를 때 국방장관이 고별사를 하였는데 “그는 세상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인물이고 세대를 초월해서 영원히 산다”고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했다.
우리들도 밀밭의 가라지는 주님께 맡기고 나의 신앙심과 삶을 갉아먹고 있는 내 마음 안에서 쉼없이 자라고 미움, 증오, 시기, 질투, 게으름 등의 잡풀을 열심히 뽑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회개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