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서품 28주년을 보내면서
어제 7월 5일은 사제로 서품을 받은지 2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서품 기념일이 언제인지를 신자들이 모르시기에 아주 조용히 지나갈 수가 있었다. 나는 낯을 가린다.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농담을 하는 줄 아신다. 그런데 정말이지 축일행사나 서품기념 행사를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갖고 있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일들은 조용히 혼자서 해결 한다. 사제로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론이나 대화 중에 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그 가운데 남들이 보기에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본심은 안 그렇다. 나는 늘 내 자신이 부끄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어제 나는 나름 28주년 행사를 혼자서 했다.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라는 글을 조용히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세우는 것으로 28주년을 나름의 방식으로 자축했다.
신학생 시절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이 새겨져 있는 비석 앞에 서서 충실하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착한 목자가 될 것을 다짐을 했었는데, 사제로 서품을 받고 나서는 과연 초심을 잃지 않고 충실히 살아왔는지를 하루 종일 피정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돌아보면 한없이 부족한 사제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온전히 받아주시길 바라면서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면서 글을 읊어본다.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
1.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기도하는 사제.
2. 힘없고 약한 자를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며, 사회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제.
3. 검소하며, 물질에 신경을 안 쓰며, 공금에 명확한 사제.
4. 청소년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며 교리교육에 힘쓰는 사제.
5. 겸손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웃어른에게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말이나 행동에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제.
6. 본당 내 각종 단체를 만들고, 사리에 맞지 않는 독선을 피우지 않으며, 평신도와 함께 본당을 이끌어 나가는 사제.
7. 교구장 및 장상에게 순명하며, 동료 사제들과 원만한 사제.
8. 신도들에게 알맞은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고 고백성사나 성사집행을 경건하고 예절답게 하는 사제
9 .데리고 있는 친척이나 친한 교우에게만 매여, 그 사람들의 말만 듣고 움직이지 않는 사제.
10. 죽기까지 후배 사제 양성에 마음쓰며 사제생활에 충실한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