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복음을 묵상하려는데 막달라 마리아 성녀의 축일이다.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성녀의 슬픔어린 눈빛이 떠오른다. 예수님과 함께 한 마지막 순간에 주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바르던 모습에 나 또한 숨이 멈칫한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장소에는 지금도 그분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돌 하나가 있다. 아마도 성녀께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그곳에 납작 업드려 울먹였을 것이다.
나도 성지순례를 가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갖가지 주님의 생애와 나의 삶을 돌아보곤 한다. 그 돌에 내 손이 닿으면서 늘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전적으로 가슴 안으로 물려오는 감정 속에는 이상하리 만큼 막달라 마리아 성녀가 생각이 난다. 오직 그분 앞으로 다가가기만을 바라는 그 마음, 그분의 옷자락이거나 그림자라도 바라보고 싶은 절박한 그리움, 자신의 모두를 바쳐 그분의 발에는 비싼 향유를 발라 드리는 모습이 나에게 전해져서 마음이 더욱 짠하다.
돌아보면 이런 마음이 바로 선물이며 열매일텐데 나는 여전히 그 감동을 적게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에 늘 아쉬움을 갖는다. 가장 사랑하는 분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이천 년 전의 한 여인에 비해 나는 자신에게 넘치게 쓰고 남는 것으로 주님께 바르려는 나의 졸렬함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고운 손도 아니고 가시덤불 같은 손으로 주님의 발을 만지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나의 가슴을 오그라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내 손은 어떤가? 여전히 미사를 집전하고 성체성사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 주님을 사랑하는 손이라고 자신있게 확신할 수 없다.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만져주고 거칠고 투박하고 못난 손을 감싸주면서 함께 기도하는 손이 아니어서 감히 주님의 발을 만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자책을 해본다.
신자들은 내가 말을 잘하는 사제로 알고 있지만 사실 주님 앞에서는 한 없이 왜소하고 부끄러움이 많으며 아주 단순한 말밖에 하지 못하는 늘 부족한 사제이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왜 그렇게 말이 나오지 않는지 마치 반벙어리처럼 가슴이 먹먹하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나를 잘 아시기에 사기조차 칠 수 없거나 아는 것이 정말로 없다는 것을 아시니까 아예 말 이 안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축일 맞이한 오늘도 나는 주님이 누웠을 그 돌 앞에서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아쉬워하던 막달라 마리아 성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