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성탄절
날이 덥다보니 시원한 장소나 찬 음식을 찾게 된다. 그리고 모든게 귀찮아진다. 그러고보니 월요일에 점심 먹으러 잠시 밖에 나갔다온 이후로는 삼일이 넘도록 성당밖에는 나가보지도 않았다. 날씨가 사람들의 생활방식마저 변화시킨다. 어제는 성당에서 묵상을 하다가 갑자기 성탄절이 생각이 났다. 찬 음식이 생각나는 것처럼 시원한 성탄절 날씨가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성탄 전야에는 동생들과 함께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성당을 다니지 않았지만 성탄절에 산타가 와서 선물을 주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욕심이 많았던 여동생은 가장 큰 아버지의 양말을 그것도 몇 개씩이나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양말 속에는 선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동생이 우리 집 굴뚝이 너무 좁아서 산타할아버지가 못 들어왔다고 서럽게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여름에 그것도 삼복더위 중에 성탄절이 생각난다는 것은 아직도 나의 마음에 동심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하도 더우니 그저 찬 날씨가 생각이 나서일까? 어쨌든 눈을 감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이 무한하신 사랑을 생각해본다. 아주 초라한 마구간에서 보잘 것 없는 갓난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발견해 본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언제나 예수님은 탄생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곱씹어본다.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오신 의미를 살피고 산다면 우리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성탄절이 되는 것이다.
인도 콜카타의 빈민들의 거리에서 온 생애를 바치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가난과 고통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느님 앞에 놓인 가난과 고통은 개인적인 탓도 있겠지만,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힘 있는 나라는 약한 나라를,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한여름에 생각하는 성탄절에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나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사랑의 나눔은 그리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나눔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내게 필요 없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이들과 나눔을 하는 것이기에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보면서 더위를 이겨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