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파견되기
우리 신앙인의 목적은 ‘우리끼리 잘 살자’는 것도, ‘내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였지만 모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파견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사인 성체성사를 파견이라는 뜻을 가진 ‘미사(Missa)’라고 부른다. 파견이란 선교사가 되어 머나먼 땅으로 떠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각자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매일, 가정으로 직장으로 이웃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파견된 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욕심 많은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평화를 심는 일이다. 그런데 평화 심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 꼭 선행되어야 한다. 이 비우는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평화를 심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빈번하게 생길 것이다. 비우는 작업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미음을 비우는 것과 물질적인 것을 비우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했지만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가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으뜸 제자로서 자만심이 있었고, 칼을 휘두를 만큼 자존심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인내심과 용서가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무너졌고, 뼈저린 성찰과 통회를 거치고서야 겸손한 제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처럼 우리도 파견되기 위해서는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때로는 자존심마저 버려야 한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비우고 나서 그 자리에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마음을 채워야 한다.
또 하나의 비우는 작업은 물질적인 차원의 것이다. 가난하면 학업을 계속하기도 결혼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로 변한 한국 사회에서 돈주머니를 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가혹하고 때로는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처럼 재물은 마음의 자유를 빼앗으며, 재물욕심은 평화를 깨는 가장 큰 방해 요소임은 틀림이 없다. 신앙인에게는 가장 큰 평화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가난한 나그네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를 내세우려 하지 말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재물과 학력과 외모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사람과 사람으로 누구든 만나야 한다. 파견의 삶을 살기는 해야 하는데 가진 것이 없다고, 말주변이 없다고 불안해 하지 말고 예수님께 의탁하면서 함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