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빨리 빨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9-11 06:10 조회수 : 73

빨리빨리 


9월이 시작된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중순으로 진입했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데 빠른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아쉽게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흘러간다. 

우리 주변에는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참 많다. 기다리는 것을 못 참고, 밥도 급하게 먹고,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빨리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신경질을 낸다. 매사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조급증은 주변 사람들과의 다툼을 가져오고 그로 인해서 인생에서 손해 보는 일을 많이 만들기에 고치는 것이 좋다. 


조급증의 근본 감정은 불안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예전부터 강대국들의 주변에 사는 바람에 유린당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기저로 자리를 잡아 조급증이라는 증세가 굳어진 것이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등 신변의 안위를 묻는 인사말이 생긴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더욱이 좁은 땅에 살면서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인 공동체 안에서 지내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면 집안과 자신이 망신이라는 생각에 바둥거리며 살았다. 이렇게 살다 보니 조급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조급증이 만든 말이 ‘빨리빨리’이다. ‘빨리빨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로부터 “빨리 숙제해” “빨리 공부해” “빨리 밥 먹어” 빨리 일어나“ 빨리 학교 가”등의 말을 지겹게 들었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빨리 취직해” “빨리 결혼해” “빨리 애 낳아” “빨리 돈 벌어”라는 말로 속을 뒤집어 놓는다. 빨리 죽으라는 말만 안 하지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빨리’라는 독촉성 발언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속성 학원, 퀵서비스, 초고속 짜장면 배달 같이 고객들의 급한 성격을 충족시켜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문제는 ‘빨리빨리’가 생활의 습성이 되어 고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급증이 국민적인 병이 된 것이다. 조급증이 우리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면에서 입증이 되었다. 

우선 건강을 해친다. 밥을 먹어도 폭식, 술을 마셔도 원샷 그러다 보니 만성 위장병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국가가 되었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조급증에 걸린 사람들은 아주 신경질적이다. 조급증이란 불안감과 경계심이 동반되는 증상이라서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작은 자극에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특히 술을 먹으면 이런 증세가 더 심해져 술자리에서 싸움질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조급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 번째는 조급증은 일을 대충대충 하게 해서 안전사고를 일으키거나 ‘또 볼 사람도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손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덜 갖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신용을 잃고 인생에서 성공은커녕 자기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한다. 


이러한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는빨리빨리 습성을 자신들의 처지와 지혜를 통해서 서서히 고쳐나가야 하는데 결코 쉬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꼭 해야 한다. 방법은 각자의 몫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