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가끔은 지루함도 즐겨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9-20 04:46 조회수 : 218

가끔은 지루함도 즐겨라


우리는 너무나도 바쁘게 살고 있다. 휴식은 고사하고, 단 몇 분간만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서 음식을 먹을 때, 걸어가면서도 운전하면서도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행동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인간을 정의하길 ‘핸드폰에 좌우되는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연천에서 한가롭게 교장으로 지낸 적이 있다. 20년동안 본당신부로 때로는 성당건축을 하느라 나를 돌볼 시간도 전혀 없이 지내다가 교구의 배려로 한직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때로는 한가한 생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첫날, 업무를 마치고 산속에서 내 스스로에게 “이곳에서는 밤에 무슨 일을 하고 지내지?”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지루한 시간이 보내면서 따분함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사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디면서 보내는 것이었다. 익숙하지도 않고 맘에 안 드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아니 그 이하라도 좋으니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다 보면, 권태의 감정은 평화의 감정으로 바뀐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신기하게도 그 방법은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처음에는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연을 배경 삼아서 걷는 시간을 늘렸다. 그리고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늘렸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느긋해지기 위해 일부러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산속의 모든 생활이 익숙해졌으며, 그 후로는 지루한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여러분도 가끔은 뭔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있음’으로 해서 느긋해지는 방법과 요령을 터득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외에 지루함을 즐기는 다른 특별한 기술이란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혹은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사고와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자. 처음에는 약간 초조해지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익숙해지고 쉬워질 것이다. 

근심과 걱정은 나는 항상 즐거워야 하고 뭔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생각, “다음에는 뭘 하지?” 하고 고민하는 마음, 그리고 지나치게 분주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마치 잠시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바쁘게 행동한다. 그런데 가끔은 마음을 비우고 느긋해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나를 돌아보고 앞을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잠깐 동안몰라도 되는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지루함을 즐겨라. 그리고 순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떨쳐 버려라. 이유는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소란스러운 일상을 벗어나 때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