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어머니와 깨진 두부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11-11 03:38 조회수 : 133

 어머니와 깨진 두부 


오늘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어떤 글을 쓸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국민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햇수로는 50년도 더된 일이다. 우리동네는 서울의 변두리에 있었다.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종을 치면서 두부를 파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늘 우리들의 아침잠을 깨우곤 하셨다. 그분은 할머니와 꼭두새벽부터 두부를 만들어서 할아버지께서 아침에 자전거에 두부를 실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판매를 하셨다.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아주머니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종소리를 듣고, 그날 필요한 만큼의 두부를 사가곤 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에는  어머니께서 아침부터 바쁘셔서 나보고 두부를 사라고 말씀하셔서 졸린 눈을 한채로 마당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소리가 저멀리서 들리기 시작해서 나가고 있는데, “쿵”하는 소리와 동시에 종소리가 멈추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밖을 나가보니, 할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있었고, 두부는 절반 이상이 땅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이미 밖에는 동네아주머니들이 몇분이 나와계셨다. 그런데 어린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펼처졌다. 아주머니들이 바닥에 흩어진 두부를 주워서 자신들 가져갈 만큼을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들 평소에 처럼 두부값을 내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동네분들이 담아간 대부분의 두부들은 성한것들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부엌으로 뛰어가서 바쁜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내 손에 있던 바구니를 받아서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에는 평소보다 많은 두부가 있었다. 그 대부분은 깨지고 흙이 묻어있던 두부들이었다. 그날 학교에 다녀온 뒤에 어머니께  물었다. 아침에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신 행동이 하루종일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두부를 만드시는 할머니가 암에 걸리셨는데, 돈이 없어서 병원도 제대로 못가고 있다고….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정이 딱하니 두부만큼은 시장에서 안 사고 할아버지가 파시는 두부를 사기로 결정했었다고 하셨다. 그날 어머니는 두부를 평소보다 많이 사셨다. 깨진 두부로는 만두를 만들어서 먹으면 되기 때문에 깨져서 성한곳이 없는 두부를 일부러 골라서 사셨다고 하셨다. 세월이 한참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멀쩡한 두부는 다른 동네에 가서 팔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