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열매 맺는 자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11-09 04:06 조회수 : 104

 열매 맺는 자리


절기상으로 어제가 입동이었다. 11월 초에는 늦가을 답지않게 30도를 육박하는 날씨를 보이더니 어제부터는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입동을 전후로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가 부쩍 빨라지고 있다. 이제 며칠 안으로 성당에 있는 느티나무에 힘겹게 매달려있는 나뭇잎들도 곧 다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여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나는 무엇을 떨구어야 할까?"를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 늦가을을 제대로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상념을 통해서 건진 당신의 생각은 무조건 맞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늦가을 햇살에 열매만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늦가을은 사람들 마음까지 성숙하게 만들어준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서 카페 앞 뜨락에 내리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 스산하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성모동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감나무를 살펴보다가 감은 나뭇가지 아무 데서는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봄의 그 화사한 꽃들이 다 떨어지고 난 그 자리, 그 꽃이 진 자리에서 윤기 있고 알찬 열매가 영그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의 열매도 마찬가지이다. 기쁨이라는 꽃, 행복이라는 꽃, 그리고 그 꽃들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어느새 조그만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를 수확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깊은 가을을 보내면서 지난 시간들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잃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바로 그 자리가 바로 열매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픔이 크면 클수록 열매는 더욱 탐스럽게 열릴 것이다. 

오늘 당신의 가슴에 열매 맺는 아픔까지 더해져 가을이 깊어질수록 당신은 더욱 고독해 질 것이지만, 이 고독은 머지않아 그 자리에 하느님이 주실 열매가 열릴 징조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