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못할 사정은 있다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말과 행동을 당했을 때 “신경 쓰지 마. 그 사람, 나에게 아무런 의미없이 그런 말을 한 걸 거야.”라는 말을 했다면 당신은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다. 아니면 ‘행동의 다른면을 보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용서’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이들의 행동 여부에 따라서 결정된다면, 변덕스럽고, 반항적이며, 항상 불만에 가득 찬 채 삐딱한 행동만 골라서 하는 아이들은 그 누구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런 기준을 적용해서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때로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해도 여전히 그들을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준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베푸는 것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모든이에게로 확대해보면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내가 그들을 자녀를 대할 때처럼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좀더 사랑으로 가득해서 평화롭게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의 날개를 펴보게 된다.
이것은 꿩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을 가거나 숨기보다는 자신의 머리를 자신의 날개 속에 처박은 것처럼 모든 일을 외면하거나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잘못을 무조건적으로 참고 견디라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못 본 체하고 그냥 지나치거나 받아들이라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고 선의로 대해주라는 의미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예를 들어서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사무를 느릿느릿 처리하여 속이 답답하다거나 너무 심해서 화가 날 지경이 되더라도, 그가 오늘 컨디션이 나쁘거나, 아니면 자기 일에 대해서 그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지적이나 상사로부터 불만스러운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해 연민을 가지려 노력해 보자. 그리고 그의 그런 언행에 화가 나더라도 잠시 참으면서 성호경을 긋고 주모경이라도 한 번 해보자. 이런 것은 자신이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할수 있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배우자나 자녀들이 나에게 날카로운 말로 쏘아붙이며 곤혹스럽게 만들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당신이 편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가족들이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상대방의 행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인내심이나 관심만 갖고 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당장 시도해 보자. 그러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