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과 기도의 힘
어제는 비록 눈발만 흩날렸지만 올 겨울의 첫눈이 내렸다. 몇 년 전 겨울에 양주에 있는 ‘중견사제연수원’에서 피정을 했었다. 피정을 시작한 다음 날,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연수원 길과 소나무 숲을 하얗게 덮더니 주변의 천보산 까지도 하얗게 변했다. 눈이 내리기 전과 눈이 내린 후의 세상이 완전히 딴세상으로 변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들이 마치 먼지처럼 힘이 없어 보였는데 그 눈들이 쌓이니까 어느새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뜩 눈을 기도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내가 하는 기도, 어느 때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때로는 먼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도를 하면서 졸거나, 머리와 가슴 속에는 분심으로 가득한 경우, 묵주기도 하면서 엉뚱한 생각으로 인해서 번번이 놓치거나 망치는 경우가 허다분했다. 그래도 이런 먼지 같고 엉망진창인 기도가 쌓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것이, 성모님께서 발현하셔서 우리들에게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또 기도하여라”하고 호소하셨다는 점이다.
그날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 저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세상을 깨끗이 덮을 만큼 정성어린 기도를 많이 해서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을 하얗게 덮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상을 메울 만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를 간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늘 해오던 기도와 묵상이었지만 더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복음의 묵상과 성무일도를 함께 그리고 성당에서 조배를 해왔다. 처음에는 무척 길게 느껴졌고 때로는 빼먹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대림시기가 되면 한국의 성인들을 한 분씩 생활 속에서 만나기 위해 한 분씩 정해놓고 그분의 일상생활과 순교를 묵상하려고 한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삶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보다는 한참 부족하셨지만 그분들은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셨고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셨다.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으셨던 우리 선조 103위 성인들과 124위 시복자들의 감동스러운 삶과 죽음은 이 혼탁한 세상의 어지러운 것을 다 덮어주는 눈처럼 우리의 삶도 깨끗하게 만들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