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대림 첫날과 김수환 추기경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12-04 04:47 조회수 : 97

대림 첫날과 김수환 추기경님


어제부터 대림시기가 시작이 되었다. 어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생긴 '바보 나눔 재단'에서 후원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본당을 방문했다. 요즘에는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후원금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라고 하면서 본당에서 모금을 해서 그 부족분을 채우고 있다고 했다. 모금을 위해서 만든 영상에서 살아 생전에 추기경님께서 하신 말씀과 음정과 박자가 모두 틀리셨지만 '열린음악회'에서 신자들과 국민을 위해서 노래를 하셨던 장면이 나왔다. 나도 그때 노래를 부르셨던 추기경님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평생을 국가의 훌륭하셨던 어른으로 그리고 종교인으로 사셨지만 신자들을 사랑하셔서 용기를 내셔서 부르신 것 이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다가 문득 잊혀졌던 추억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미사 중이었지만 얼른 휴대폰을 가져와서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정확하게 20년전 대림 첫날에 은퇴하신 추기경님이 당시에 내가 근무하던 청구성당에 오셔서 함께 미사를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처음 본당을 맡아서 기대가 많았지만 현실은 여러가지로 너무나도 열악해서 분가시켜 준 모본당에서 신자들이 안오셔서 미사를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도 너무 적었다. 그리고 성당은 40년이 더 된 목조 공장건물을 급조해서 만든 공간이었기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한없이 추웠다. 그래도 열악한 성당이지만 자신의 성당이라고 열심히 미사를 오시는 신자분이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은퇴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 편지를 썼다. 송구하지만 본당에 오셔서 미사를 함께 봉헌해주시고 신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덕담을 해주셨으면 고맙겠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이유는 당시에 추기경님께서는 은퇴를 하신 후에는 본당에는 절대로 가시지 않으시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서 마련된 장소만 방문을 하시고 미사를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참으로 놀라운 연락을 받았다. 추기경님께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첫날에 본당에 오셔서 미사를 함께 봉헌해주시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사예물은 준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긴장을 했었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으로 신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미사를 봉헌한 2003년 대림 첫 주일에 좁은 성당이지만 신자들로 만석을 이뤘다. 주변에 성당 신자들도 그 소식을 듣고 많이들 오셔서 성당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마다 서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에 추기경님께 감사하다는 말씀과 미사예물은 준비 안했지만 대신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선물을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신학생시절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추기경님께 직접 불러드렸다. 물론 추기경님도 신자들도 놀라워하셨다. 노래가 끝나자 추기경님께서 내게 다가오셔서 내 손을 꼭잡고 말씀하시길, 당신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사제생활을 하셨지만 사제가 불러준 노래는 처음 듣는다고 하시면서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답가를 그 자리에서 불러주셨다. 

정확하게 20년 전의 일이다.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추억이 '바보나눔 후원회'의 방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대단하신 어른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제 미사 중에 나의 소중한 추억을 신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추기경님께 불러드렸던 노래를 미사 중에 대림동 교우분들께 다시 불러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이 노래는 대림동 교우들에게 불러드리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용기를 주셨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계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위해서 다시 불러드리는 노래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