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의 추억
가끔 어릴 적 시간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듯이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래도 기억 속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은 추억들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 용케 남아 있는 순간들은 크고 거창한 일보다는 사소한 순간일 때가 더 많다.
오늘 아침에 거울을 보다가 이발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발소를 가는 일이 나에게는 여전히 귀찮은 일 중에 하나다. 나는 이발을 하러 주변에 있는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가지 않고 예전부터 이발을 하던 양주에 다녀온다. 거리가 무려 왕복 80km 이상을 걸려서 매번 귀찮지만, 바람도 쐴겸 그리고 이발소 사장님과 친분 때문에 서울로 전입온지가 일년 반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닌다.
그러고보니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는 것 중의 몇개는 이발소에 관한 것도 있다. 돌아보면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한 두시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도 힘이 들었고, 이따금씩 머리를 깍이다가 ‘바리깡’이라 불렀던 기계에 머리를 쥐어 뜯기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릴 적 이발소는 지금 생각해도 촌스러움과 정겨움으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키가 작은 어린이들은 빨래판처럼 생긴 판자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깍아주던 모습도 생각난다. 머리를 깎은 뒤에는 꼭 머리를 감겨주었는데, 연탄난로 위 양동이에서 끓고 있는 물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 머리를 감겨 주었다. 샴푸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머리는 빨래비누로 감을 수밖에 없었는데, 머리를 감기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자면 흘러내린 비누거품이 두 눈으로 들어가고, 그럴수록 눈을 꼭 감지만 그래도 두 눈이 쓰라리곤 했다. 머리를 감긴 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줄 때, 그때 이발사는 얼른 두 눈부터 닦아주었다. 머리를 감기는 동안 제일 불편한 곳이 두 눈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았기에 눈부터 씻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엔 그저 고마웠던 그 순간이 세월이 반세기가 훨씬 넘어가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겐 두고두고 고맙다면 그 사람의 기억 안에서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 두 눈부터 닦아주던 이발사의 추억을 통해서 깨달았다. 나의 머리를 깎아주시던 이발사의 얼굴이 전혀 기억이 안나지만 어떻게 지내셨을지, 지금 살아 계실지가 궁금해지는 새벽이다.
우리의 삶이란 매 순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