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손익 계산서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나는 군대에서 천주교에 입교를 했고, 세례를 위한 교리는 수녀님께로부터 배웠다. 시간도 4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다른 것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교리 중에서 한 가지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죽었다. 그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느님을 만나면, 자기 멋대로 살아온 것 때문에 ‘큰일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없다면 멋대로 산 것에 대해 벌을 줄 분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굳게 믿었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다가 죽었다. 그 사람은 죽어서 하느님이 계시면 상을 받을 것이니 큰 ‘축복’이고,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이득도 손해도 보지 않는 본전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망자를 평가할 때는 자기 멋대로 죄를 지으며 살다가 죽으면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평가할 것이고 하느님 말씀대로 이웃과 잘지내고 선한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의 경우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평가를 할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을 믿어서 이득을 보면 봤지,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손익 계산으로 따진다는 것이 어리석고 우스워 보이겠지만 막 입교한 나에게는 매우 설득력 있는 교리였다. 하느님께 대한 불신으로 얻어지는 ‘큰일과 다행’이라는 열매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모양으로 살더니 결국 죽고 말았군.” 하는 소리와 “아까운 사람 죽었네.” 하는 소리 중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과 믿음으로 구원된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보듯,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을 구원과 의인으로 이끄는 엄청난 힘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많은 인간 곁에 보내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을 깨닫고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이득을 보장해 주실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며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믿음뿐이다. 연주를 듣다가 왕이 감동해서 벌떡 일어났다고 하는 그 유명한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빠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나중에는 남의 빚까지 썼지만, 건강도 찾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갔다. 그러나 그는 고통과 절망, 슬픔의 장소인 감옥 안에서 불후의 명작인 ‘메시아’를 작곡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통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믿음의 시작은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세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이미 세례를 받았음을 꼭 기억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을 증명하는 삶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