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덤으로 받은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면서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1-01 04:38 조회수 : 90

덤으로 받은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면서


새해가 되면 꼭 생각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덤’이라는 단어이다. 새해는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지로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다는 의미이다. 나이를 조금 먹고 보니 하느님으로부터 더 기회를 얻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된다. 지금까지 잘못했지만 한 번 더 사랑하고, 한 번 더 기도하고, 한 번 더 봉사하라고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024년 갑진년을 기회로 얻지 못하고 먼저 가신 이들이 셀수도 없이 많았다.

 

루가복음 13장에서, 포도원지기가 농장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자, ‘내년에는 틀림없이 열리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역시 열매가 맺어지지 않자 잘라버리려 할 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이 성경의 대목을 읽을 때마다 무화과나무가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 년이 아니라 60년 그 이상의 기회를 받았음에도 열매 맺기를 제대로 못한 나를 여전히  기다려주고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인내를 무시하면서 살았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다. 나는 가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강론을 교우들에게 들려준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시간,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거저 주어진 시간, 그러나 언젠가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만 하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 그 시간을 자신이 돈 주고 산 것처럼 자기만을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란 열매를 맺도록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요, 기회요, 인내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바쁘다’라는 말이다. 사실 바쁘고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바쁘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하느님이 주신 시간에 하느님을 제외하고 바쁘게 산다는 게 맞는 것일까?


예전에 한 보육원에서 근무하셨던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한 아이가 축구공을 하도 가지고 싶어해서 성탄 때에 선물로 축구공을 사 주었더니,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놀던지 나중에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도,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릴 뿐 아니라 잘 때도 꼭 끌어안고 자더라는 것이다. 결국 선물로 받은 축구공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고 말았다. 

요즘 우리 주변이나 성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초등부는 그럭저럭 운영되지만중학생만 되면 성당에 오는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부모도 하느님이 주신 자녀들을 학업에만 신경 쓰느라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신자들도 하느님이 주신 사업체와 재물을 관리하느라 바빠서 하느님을 외면하 있다하느님이 주신 젊음건강총명함을 뜨거운 쾌락교만방탕으로 소모하기에 바빠서 하느님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그들이 축구공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를까새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덤으로    주셨다는 것을 잊지않고  기억하면서 시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