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왕 중의 왕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1-19 05:00 조회수 : 106

왕 중의 왕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다


신학교 시절 축제기간에는 일명 거리극으로 1학년부터 부제반까지 각기 주제를 받아서 신학교를 돌면서 공연을 할 때 했던 대사 한마디가 생각이 났다. “세상의 모든 왕들은 금관을 쓰는데 왕들 중에서 최고 왕이신 예수님은 금관은커녕 가시관을 쓰셨다. 지배하고자 하는 왕은 금관을 쓰지만, 진리의 왕은 가시관을 쓴다. 힘으로 짓밟고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왕은 금관을 쓰지만, 사랑과 평화를 다스리는 왕은 가시관을 쓴다.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나선 신학도들이여 빛나는 금관이 아니라 피 흐르는 가시관을 받아 쓰자.” 

그렇다. 그리스도는 세속적으로 권력을 부리고 명령을 하고 힘을 쓰는 왕이 아니라 사랑의 왕, 봉사의 왕, 진리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는 누구나 할 것없이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 왕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 나라는 대통령이 통치하는 민주국가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금관 쓰기를 바랄 뿐 가시관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남의 잘못은 크게 떠들어대고 자신은 약속과 신의를 배반하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때로는 무시할 뿐만 아니라 갖고 있는 권력을 통해서 무지막지하게 몰아부친다. 

그들의 행동에서 정직하고 진실되고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왕이 되려고 흉내조차 내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니 때로는 분노가 치민다. 이 시대는 짓밟고 올라서는 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떠받들고 섬기는 왕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권력으로 내리 누르는 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쓰러져 가는 가정을, 황폐화되는 인성을 어루만져 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왕이 필요하다.


지금은 성녀가 되신 인도의 데레사 수녀님이 어떤 병든 어린 하나를 안고 그 아이의 흐르는 고름을 치료하고 있을 때 기자가 데레사 수녀님에게 물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권력과 명예가 높은 사람, 평안하게 즐기며 사는 사람을 볼 때 부럽거나 시기심이나 질투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때 수녀님이 이런 말을 하였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사랑하고 섬기는 진리를 터득한 한 여인의 고백이었다. 


우리의 성공의 기준은 ‘몇 사람을 밟고 살았는가’가 아니라 ‘몇 사람이나 섬기며 살았는가’가 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짓밟고 일어서서 얻은 금관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면서 얻은 가시관을 삶의 보물로 여기는 지혜를 터득했으면 한다. 우리가 따르는 왕이신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왕들 중의 왕이신데 그분의 머리에 얹힌 관은 백성을 힘으로 내리누르는 거짓과 음모, 위선과 가면으로 얹혀진 금관이 아니라 위를 쳐다볼 시간조차 없도록 사랑으로 겸손으로 섬김으로써 얻은 가시관일 뿐이다. 

남을 짓밟음으로써 얻은 금관을 쓰고 있는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기 위하여,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얻은 가시관을 쓰고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나는 빌라도의 금관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