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친구들
어제 복음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중풍 병자가 치유된 내용이었다. 내가 복음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치유 그 자체보다는 과정이었다. 중풍 병자는 예수님이 근처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분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신의 몸 상태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아픈 벗을 위해서 들것을 만들어서 아픈 친구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입구에는 이미 군중들 때문에 꽉 차있어서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망설임 없이 아픈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들은 곧 뒤를 돌아 한적한 곳에 환자를 내려놓고는 마당을 덮고 있던 대추야자 가지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지붕이 벗겨질 때마다 집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지붕 위로 향했다. 드디어 지붕에 공간이 생기자 친구들은 들것에 누워있던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 보낼 수 있었다. 참으로 놀랍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친구들의 행동에 감동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중풍 병자에게 주저없이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찬하셨던 것이다. 그런 감동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당시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율법 학자들인데, 그들의 의심에 찬 마음을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곧 바로 당신이 누구 신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중풍 병자는 이 한마디 말씀에 힘을 얻고 그곳을 친구들과 함께 떠났다.
복음이 보여주고 있는 중풍 병자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슨 의미와 교훈을 찾아야 할까? 그리고 네 명의 친구들은 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 우리는 중풍 병자에게서 죄와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앞에 한참을 앉아 있으면 나의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풍 병자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들로 병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나서야 한다. 주님께 나아가면서 잘 보이려고 과장하거나 치장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한 모습을 통해서 나의 삶을 성찰하면서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날 받아주시고 이끌어 주시며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복음에 등장하는 네 명의 친구가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은 바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