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한 권의 책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2-03 04:11 조회수 : 97

한 권의 책 


어제는 점심 후 1시간 30분동안 산책을 한것 빼놓고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싫어질 때 마음에 떠올리는 글귀가 있다. ‘지갑에 돈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방안에 책을 가득 채우는 게 더 낫다’

십여 년 전 제주도 시골 카페 화장실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내 가슴에 다가온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씩 글을 떠올리면서 지갑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채우기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산게 아닌가 하는 뼈아픈 자책을 해보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림을 아껴서 사주셨던 위인전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필요에 의해서 책을 본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시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본지 언제였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도 변질이 돼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한 번씩 책을 정리한다. 연천에서 대림동 성당으로 이사 오면서도 갖고 있던 책을 대부분 정리했다. 망설이면서도 이제는 눈이 나빠서 다시는 책을 열심히 볼것 같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합리화했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없는 집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것은 전기가 없거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집과 같다. 영혼이 없는 쓸쓸한 육체와 같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책 대신에 최신식 가전제품으로 집안을 채우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일반화 되었다. 

요즘은 눈이 침침하고 시력이 나빠져서 책을 보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죽을 때 까지 책을 손에 놓지않고 살다가, 그 분을 만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한 손에는 성경책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묵주를 들고 죽었으면 한다. 

나는 언짢은 일이 생기면  시편이나 잠언서를 읽으면서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힌. 성경에는 나의 분노와 좌절감을 잠재워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안에는 에너지가 존재한다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 말했다. 그래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면 책을 쓰다듬기라도 하라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권의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생이라는 책을 소중히 채워나가고 싶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생이라는 책을 제대로  쓰지않고 대충 넘겨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내려간다. 나의 인생도 좋은 권의 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