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든지 크던 작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그 십자가는 다양한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될 수도 혹은 아픈 부모가 될 수도 있으며 지인들인 경우도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십자가라고 하면 행복이라는 의미보다는 고통을 먼저 떠올린다.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을 때까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대로 버리고 싶은 고통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신앙인이 느끼는 고통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십자가란 고통을 상징한다. 신앙인인 우리에게 십자가는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생각해보고 가슴에 지니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십자가는 고통만을 상징하지 않는데, 하느님과 죄 많은 인간을 화해시켜준 장소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에는 고통과 동시에 사랑의 의미와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사랑의 의미보다는 고통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서 십자가라고 하면 무조건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다면 체념하고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는 고통과 징벌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안에 안고 살아가면 어떨까? 물론 내가 끌어안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벅차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형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거나 땅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정히 품에 안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기 의지와 인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십자가를 거부하려고 애쓰지 말고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안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신앙적이고 순명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품에 안고 먹이는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자신의 아기와 같이 귀한 존재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몽상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살다보면 작은 십자가든 큰 십자가든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십자가의 무게는 똑같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영성가들이 말씀하시길 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자기 십자가보다 더 작고 가볍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견딜 수 있는 십자가 만을 주신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보다 작고 가벼운 십자가를 달라고 간구하지 말고 차라리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청해보는 것이 더 현명한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