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안 그랬는데, 사람이 변했어!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는 잘모르겠다고 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은 그 무엇도 현상을 유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럭저럭 알고 있다. 그리고 시간을 무한정 견뎌내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끝내기도 하고 찬란한 우정을 빛바래게 하고 강철 같은 신념을 부서뜨리고 한다. 사람의 몸을 늙게 만들고 생기있던 철학적 자아를 혼돈과 무기력에 빠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 거래하고 경쟁하고 협력하고 의지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과 하루 아침에 절교하는가 하면 누군가를 한없이 좋아하다 욕하며 등을 돌리기도 한다. 말없는 ‘손절’에서 공공연한 비난과 배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인간 관계가 깨질 때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책임을 떠넘긴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사람이 변했어!’
그렇다, 사람은 변한다. 아니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일인가?를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도 늘 같은 모습인 게 좋은가? 물론 좋게 달라지면 변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우린 그런 변화를 ‘발전’이라 하고 더 못해지면 ‘퇴행’이라 한다. 그렇다면 발전인지 퇴행인지 판별하는 객관적 기준은 무엇일까? 기준 자체가 애매해서 한 사람의 변화를 두고 발전인지 퇴행인지 다투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독재를 비판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비판했던 바로 그 독재자를 구국의 지도자로 찬양하는 일이 비일배재했다. 필명으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에세이를 써서 반미운동의 스타가 되었던 사람이 몰래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고 돌아온 뒤 북한 체제를 타도하고 북한 동포를 구출하는 운동에 투신한 경우도 보았다. 그와 반대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면서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로 간결하고 멋진 문장을 쓰던 소설가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청년 노동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산문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경우도 있었다.
살면서 신념, 철학, 성격, 태도가 크든 작든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면서도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외모가 변하는 만큼 내적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가 변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로 변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삶이 변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사제로 살면서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온 '하느님 제일주의'가 변한 것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돌아볼수록 나도 사제라는 외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내적인 삶 안에서 끊임없이 작은 변화를 하면서 살아왔음을 실토하게 된다. 하지만 그 변화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퇴행’이 아니라 ‘발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