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임 신부를 맞이하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휴가 끝났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으로 차분하게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은 부주임 신부가 새로 발령받아서 오는 날이다. 예수님의 대리자이신 신부님께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사제들의 삶은 특히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하는 소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세상의 그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을까?
소금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소금의 짠맛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한다. 소금이 없으면 결국 죽게 된다. 소금의 가장 큰 역할은 썩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냉장고가 없던 예전에는 생선이 썩지 않도록 소금에 절였다. 또한 소금은 음식을 맛있게 만든다. 음식이 너무 싱거우면 맛이 나지 않는다.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들의 공통점은 간이 심심하지 않고 짠맛이 가득한 것이 그 증거이다. 소금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녹아야 음식에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럼 빛이 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빛은 소금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빛은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고 성장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빛이 없다면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빛은 어두움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빛은 따스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빛이 될 수 있을까? 빛을 내는 촛불은 가만히 있으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태워야만 비로소 빛을 낸다. 자신이 타서 없어져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의 생명의 원천인 태양도 자기 자신을 불덩어리로 태우기 때문에 그 열과 빛이 이 지구까지 전달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대부분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제구실을 한다. 나무, 꽃, 물고기, 짐승, 바위 등은 가만히 있으면 제구실을 한다. 우리가 입은 옷도 신발도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초와 소금은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지 않고 녹고 태워야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신앙인도 초와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해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자기를 태우지 않는 초는 액세서리에 불과하고 자신을 녹이지 않은 소금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 또한 이웃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액세서리나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는 능력이 없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신자들의 희생하는 삶은 요즘처럼 여러가지 어려움들 때문에 많이 지친 사람들에게 생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아주 적은 양의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음식을 상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어둠이 깊은 곳에서는 단 한 자루의 초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기꺼이 한 줌의 소금과 한 자루의 초가 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