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은 안녕하십니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카고대학에서 총장이 입학생들에게 한 연설을 소개하고 싶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어른의 길로 출발합니다. 인간은 25세가 되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하며 30세에는 자신의 인생철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는 20대 초반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철학대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아주 짧고 뻔한 연설이었지만 신입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동양에서도 나이를 언급하면서 적정한 나이에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도 과거를 회상해보면 20대까지만 해도 나이 사십을 넘고 오십, 육십이 된 분들을 보면서 가끔은 ‘저 연세가 될 때까지 어떻게 사셨길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어찌 세월을 마냥 흘려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인생 나이 40살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잘난 척 떠들기를 수없이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도 60이 훌쩍 넘고 보니 그 젊은 시절에 떠들었던 말들이 부끄러움이 되어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인생이 어려운 것이며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를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 나름대로 고민을 하면서 열심히 인생을 설계하지만 세파에 시달리며 살다 보니 예전에 결심했던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점차 희미해저만 간다. 그리고 그럴듯한 변명을 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왔고 그래서 처음 계획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마치도 손가락에 낀 묵주반지처럼 때로는 액세서리 취급하며 마음대로 끼웠다 뺐다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나뿐이겠느냐는 식으로 위로를 삼고 있다.
얼마 전에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신자들의 주일 미사 참례율이 전체 교우 숫자의 20퍼센트 내외이고, 냉담자와 행불자가 50퍼센트 전후이며 교적을 성당에 두고 간신히 냉담자, 행불자 신세를 면하고 있는 숫자들도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어떤 부류인가하는 생각을 갖기 전에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있다. 신앙은, 사도 바오로처럼 무서운 파도에 자신을 내던지고, 사나운 맹수의 이빨 앞에 자신의 몸뚱이를 내놓으며, 모진 박해의 칼날 아래 자기 목을 들이대는 강인하고 끈질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지금 나의 신앙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우선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의 신앙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