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사순시기와 석상오동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2-24 04:35 조회수 : 104

사순시기와 석상오동


최고의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든다. 이유는 오동나무는 가벼울 뿐 아니라 물에도 강하고 불에도 쉽게 타지 않아 가구나 악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다. 그런데 오동나무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때는 나무를 베어서 바로 사용하지 않는다. 나무를 켠 뒤 5년 동안을 비와 바람과 눈을 맞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린다. 그렇게 세월을 먹어야 비로소 악기를 만드는 소재가 된다는 것인데, 5년의 시간 동안 풍화하며 자신의 몸속에 박힌 진을 모두 빼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동나무라고 해서 다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악기를 만드는 좋은 나무는 따로 있는데 자라면서 모진 환경을 견딘 오동나무 일수록 소리가 아름답다고 해서 석상오동을 최고로 치는데, 석상오동이라 함은 바위 틈에서 자란 오동나무를 말한다. 환경이 좋고 기름진 땅에서 어려움없이 쑥쑥 자란 오동이 아니라,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간신히 자라다가 끝내는 말라 죽은 오동나무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온다고 하는데, 힘겨운 세월을 이긴 촘촘한 나뭇결에서 울려오는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비슷한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골에서는 감나무에 감이 안 열리면 밑동에 개나 소를 매어 놓는다. 감이 안 열리면 거름을 줄 것이지 개나 소를 매어놓는게 이상하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개나 소를 나무 밑동에 묶어 놓으면 짐승이 움직일 때마다 감나무 껍질이 까지게 된다. 그러면 나무가 상하게 되는데, 바로 그렇게 껍질이 상하라고 일부러 매어 놓는 것이다. 껍질이 벗겨지면 나무는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죽기 전에 후손을 퍼트려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한다. 


살다보면 원치 않지만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슬며시 찾아온다. 고난은 한 순간 거칠게 많은 것을 빼앗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가져다 준다. 참으로 야속하지만 하느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이 없을리 없다. 고난을 당할 때는 더없이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전에 알지 못했던 삶의 진실과 나의 성장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바위틈에서 자라다 고사한 석상오동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리고 밑동이 까지는 감나무에서  많은 열매가 달리는 것처럼, 이 사순시기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우리 삶이 시련을 극복하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이   있도록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