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최선의 위로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11-26 21:19 조회수 : 90

최선의 위로


내가 어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일이다. 평생을 사제로 살기에 남을 위로하면서 산 사람이 어렵다고하면 믿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진심으로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결국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 슬픔의 깊이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내 스스로가 적지않게 긴장을 한다.

사실 사람의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위로도 가지각색이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성적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마침 내 일처럼 화내거나 속상해하는 감정적인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런 말 만큼은 피하는 편이 낫다’ ‘이런 태도가 더 도움이 된다’ 싶은 기본적인 위로의 요령을 조금씩 터득했다. 


먼저 문제의 원인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태도는 삼가해야 한다.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고 “너의 그런 행동이 문제였다” 하는 식의 쓴소리는 삼가야 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관한 의견을 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지나간’ 행동을 지적질 하면서 죄의식을 유발하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그들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태도도 삼가야 한다. 잘못하면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짓을 하게 된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의지가 없다면, 경솔한 언행으로 상대방에게 좌절감을 줄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행동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자세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길더라도 되도록이면 다 들어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조언을 해줄 때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미칠 영향력을 의식하고 책임감 있게 말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앞서 말했든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상대방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고, 어떤 조언을 건네도 사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이고, 대부분은 그게 전부다. 위로에 서툴든, 말재주가 없든 진지하게 듣는 자세는 그들에게 최선의 위로가 된다. 


이러한 형태는 사제들에게도 동일하다.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내 고민과 슬픔을 나누곤 한다. 딱히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털어놓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해소가 되지 않더라도 마치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가슴이 뻥뚤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그런 경험은 문제를 차분하게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분명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누군가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을 느낀 안도감을 기억한다. 나는 그것이 타인에게 건넬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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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 안에 모셔져 있는 성모자상